며칠 전 아침에 혜화동에 있는 병원에 남편과 함께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출근하는 사람들, 문병온 사람들, 환자를 실어나르는 차들때문에 좁은 후문을 차를 타고 통과해서 올라가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어떤 아이가 차도 한쪽에서 손잡이가 달린 보드를 타고 헤매더군요. 자칫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고, 차량소통에 방해가 되고 있었어요. 아침부터 저렇게 차도에서 보드를 타게 하는(?) 부모에 대해서 짜증이 났습니다. 어린 아이가 병원에 혼자 왔을 리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몇 분 후.. MRI 찍는 접수대에서 아이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유심히 보니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얼굴인데 체격은 마르고 왜소했습니다. 진료카드를 내미는 아이에게 접수대 직원이 물었습니다. "너 혼자 왔니?" "네" "너 MRI 전에도 찍어봤니?" "네" 환자 본인이 진료 전에 작성해야 하는 카드를 직원은 왠일인지 아이에게 일일이 물어서 기록합니다. "너 집이 어디니?" "장위동이요" 아이를 뻔히 보던 직원이 툭 던지듯 물어봅니다. "... 뭘 타고 왔니?" "택시랑 버스랑요." "난또~ 혹시 보드타고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왔나해서.. " "그럼 또라이게요? 어떻게 장위동서 여기까지 보드를 타고 와요? 그럼 또라이게요?" 아이는 "그럼 또라이게요?"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좋았는지 자꾸 반복했습니다. 그 어투에 또라이가 아니라는 긍지가 배어 있습니다.
그 아이는 뇌 쪽에 MRI를 찍는 모양이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눈 양쪽의 초점이 사시처럼 조금 다르게 맺혀져 있는 듯도 싶었습니다.
뇌에 MRI 찍으러 아이 혼자 보드를 가지고 오게 되는 경우가 어떤 경우인지 저는 모릅니다. 엄마가 죽고 아빠 혼자 기르는데 아빠가 직장에 출근을 꼭 해야만 하는 집일 수도 있고, 아이가 이제 많이 좋아져서 정기검사받으러 온 거라 자립심을 기르기 위한 훈련의 하나일 수도 있고, 병원 앞까지 부모가 데려다 준 것일 수도 있고 저는 모릅니다. 뇌에 이상이 있어서 바퀴달린 것을 타는 균형동작이 안되던 아이가 이제 많이 좋아져서 보드를 타며 자신이 건강해졌음을 누리고 있는 건지 그래서 보드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인지 어떤지 저는 모릅니다.
아까 아이에게 그리고 그 부모에게 짜증을 내려했던 내 자신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가 건강해지길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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