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맞은켠 집으로 새로 이사온 가족은 모두 다섯 식구였다.
부부가 함께 농협을 다니는 젊은 내외와
세 살쯤 된 딸아이와 이사와서 낳은 갓난아기와
산모구완과 함께 손주들을 봐주시러 온 친정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반인 우리집과는
세대차이가 너무 큰 탓에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나 인사를 할 뿐, 서로가 거실 입구도 들어가 본 적 없는
뜸한 사이였다.
친정어머니인 할머니는 키가 작고 허리가 살짝 구부러진 온화한 얼굴이었는데
딸이 출근하고나면 동네 할머니들을 불러서
차도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지, 이따금 할머니들이 그 집으로 들어가고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그해 봄 나는 오랜 입원 생활 중간에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 널브러져 있었다.
항암과 방사선 동시 치료도 힘들었지만, 예상치 못한 후유증과 감염으로
정신도 몸도 피폐해져 있었고,
너무 오랜동안 항생제를 먹은 탓에 항암제를 맞은 지 일주일이 훨씬 지나도
24시간 늘 속이 울렁거려 먹는 일이 고역 중의 고역이었다.
오후시간에 오시는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받고 있었지만,
암환자를 돌본 적이 없던 아주머니는 암환자 밥상에는 어떤 반찬을 해야할지
엄두를 내지 못하고 늘 내게 뭘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곤 했다.
무엇을 하면 먹을 수 있을지..!!
그거야말로 내가 알고 싶은 것이었다.
시원치 않은 내 대답만큼이나 밥상 위에는 정말 먹을 게 없었다.
도우미 아주머니나 식구들이나
무얼 해줘도 환자가 먹지 못하더라는 생각에,
반찬이 문제가 아니라
식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식구들이 모두 학교와 직장으로 떠나고
도우미 아주머니가 오려면 아직 먼 오전 나절..
남편이 출근하면서 차려놓고 간
시금치 나물과 두부, 된장국, 김치.. 김.. 식어버린 밥이 올려진 밥상 앞에 서성이다
맥을 놓고 있는데 현관벨이 울렸다.
스카프를 뒤짚어쓰고 겨우겨우 나가보니,
앞집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아프다는 얘기 들었는데.. 통 얼굴 못봐서 걱정했었다고..
이제 집에 왔으니 빨리 먹고 기운차리라고...
뭘 해주고 싶어도 재료가 없어서 이것만 좀 가져왔다고...
내밀은 것은 지금 막 쑤어가지고 온 뜨끈뜨끈한 흰 죽 한 사발이었다.
뭐라 대답도 변변히 못하고
뜨거울 때 먹으라고 한 할머니 말대로
식탁에 앉아서 그 김이 오르는 흰 죽 한 사발을
머리털 없는 뒷머리에 땀을 빨빨 흘려가며 너무 맛나게 먹었다.
꼭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해준 것과 똑같은,
밥알이 부서지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게 찰진
너무 맛있는 따끈따끈한 흰죽이었다.
흰죽에 담긴 부드러운 격려와 위로가
내 가슴까지 뜨겁게 한껏 채워주었다.
얼마 안되어 그 아파트에서 이사하는 바람에
할머니께 감사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할머니가 건강한 노년을 보내시길..
하나님께서 그 은혜와 사랑을 나 대신 갚아주시길 바란다.
할머니, 너무나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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