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비님
오늘
토비님 임종 10분전까지 토비님 곁을 지키셨다는 분과
토비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드린 그림 이야기가 나왔다.
토비님은 대학생 시절 남편의 야학선배였다.
나는 그런 사연을 모르고 북한산 소풍팀의 소풍에 참여했었는데
후기에 올려진 사진을 남편과 함께 보다가
남편이 토비님이 김** 씨가 분명하다고 깜작 놀랐다.
(토비님은 그 소풍에 참여할 당시 이미 대장암 4기로
진단을 받은 지 얼마 안되던 시기라
난감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잘 적응이 안되는,
그런 상태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투병이 깊어짐에 따라 암싸사에 쌓여가는 토비님의 글들 속에서
그분만의 위트, 남다른 치열한 사고, 솔직하고 담백한 기백 같은 것들을 보면서
꼭 이겨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커갔던 거 같다.
그 이후 북벽산이었던가, 정암산방(?)으로의 소풍에도,
또 청평소풍에도 따라갔고,
나중에는 병원으로 문병을 가게 되었는데
늘 격려를 받는 것은 거꾸로 내 쪽이었던 거 같다.
특히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해 많이 응원해주셔서
지금까지도 마음 한켠 뜨겁게 감사하다.
그것이 마지막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샘병원에서 마지막 뵈올 때
허접스럽지만 위의 그림을 드렸다.
산을 좋아하는 분이 산을 못가고 있는 걸 위로하고 싶어서
초록의 숲이 보이는 그림을 골랐다.
저 벤취에 잠시 쉬어가시라고,
수리산에 갔을 때 찍었던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을 드렸다.
건강해지면 꼭 같이 이 산에 오르자는 약속으로 그림을 드린다고 했다.
(사실 내 마음 한켠에는 혹시 늦기 전에 내 그림 실물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토비님은 개인전을 하면 꼭 와주시기를 바라는 1순위 손님이었다.)
토비님은 자신이 블로그를 만들고 투병기를 써온 제일 큰 이유가
두 어린 딸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적에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 수 있도록
암에 걸려서 그냥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싸웠던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고 했다.
장례식때 경황이 없어서 그 이야기를 부인께 전해드리지 못해서
나중에 전화로 메세지를 보냇으나
전화번호가 이미 바뀐 뒤였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 토비테크님은 그리스도 신자가 되셨다.
문병간 내게 그 소식부터 가르쳐주시며,
평생 장사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다 받아들이며 살아온 내가
굳이 예수만은 받아들이지 못하겠단 이유가 뭔가 싶었다고,
부인이 목사님을 모셔와서 기도를 받을 때
뜨거운 느낌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와서 왈칵했다고,
이제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그 말을 듣는 나도, 그 말을 하는 토비님도 얼마나 기뻤는지!!
돌아가시기 전날
몇달만에 집에 들러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루 밤을 주무시고
이 방 저 방 다 둘러보시고 병원으로 가셔서
그 다음날 돌아가셨다는 사모님의 전언에..
또 한번 감사의 눈물을 흘렸었던 기억이 난다.
토비님이 내 그림을 기쁘게 받으셨었다는
오늘 그 분의 전해주는 말에
토비님 생각이 나며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이 흐른다.
감사함의 눈물이다.
위의 사진은 그림 그리자마자 찍어놓았던 사진인데
사진 상태가 좋지 않아서
실물과는 색상이나 명암에서 차이가 많이 나지만,
그래도 이렇게 남아 있는 흔적이 있어서
토비님과의 추억이 되어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