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경부암 투병담

[스크랩] 투병담 6: 취미생활에서 얻은 것

빅토리기쁜맘 2011. 6. 3. 10:00

오늘은 제가 암걸리고나서 시작한 취미생활에 대해서 글을 씁니다.

 

처음 시작은 이랬습니다.

딸애가 다니던 미술학원에서 지역사회를 위해 '무료 어머니 데생교실'을 개최한다는 안내문을

학부형들에게 전화메세지로 보내주었어요.

 

(당시 저는 항암이 끝나고 4개월쯤 되는 시점이라 밖에 나가려면 가발을 써야했던 때였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림프배액관은 떼고난 후였지요.)

 

그 무료강습 메세지를 확인한 순간, 하늘이 제게 기회를 주는 거 같이 느껴졌어요.

 

사람들은 제가 아픈 사람인 줄 몰랐어요.

정상의 건강한 주부들과 암을 의식하지 않고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게 너무 오랜만이었습니다.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림을 시작한 지 올해로 5년째.

그림은 제 삶을 아주 많이 변화시켰습니다.

 

무엇보다 무료하다는 기분이 없습니다.

그림을 통해 작은 목표들이 생기고 긴장과 적당한 스트레스, 또 성취감을 통한 스트레스의 해소 등을 경험하면서

때때로 엄습하던 늙는다, 퇴보한다, 

하루하루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데 나는 하릴없이 연명만 하고 있다..는 허무한 기분으로부터

확실히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또 취미생활을 통해 만난 사람들간의 관계는

동네 아줌마들하고의 만남보다 훨씬 끈끈한 유대와 깊은 이해가 가능한 거 같아요.

동네 아줌마는 여간한 경우 아니면 이사가면 그만이지만

저는 처음 그림 배울 때 만난 사람들과 아직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거든요.

서로의 고민, 예민하거나 의외로 과감한 성격.. 이런 걸 속속들이 그림을 매개로 알게 되구요.

그림을 통해 서로의 도전과 좌절에 대해 공감하고 존경하는 등,

이런 식의 건강한 관계가 제 삶에 엄청 큰 활력을 줍니다.

 

처음부터 그림을 잘 그린 건 아니지만,

저는 제 병때문에 우여곡절이 생길 동안에도

그림배우러 가는 것을 빠지기는 할 지언정 멈추지 않았고

제 병에 대한 고민이나 두려움을 그 모임에 전염시키지 않았어요.

그냥 일상으로 진행되는 만남이 있어야 제가 편할 거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제가 암환자였다는 걸 알게 된 거는 몇 년 흘러서였어요.

 

첨에 시작할 때엔 내가 할 수 있을까,

검진결과가 나쁘게 나왓을 때는

당분간 못하겠다고라도 말을 해야 하는 건가.. 고민했지만,

 

제가 본 영화 <식스 센스>에서 깜직한 주인공 꼬마가 부르스 윌리스와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될 때 했던 대사...

"다시 못보더라도.. 내일 또 만날 것처럼 인사하자"고 했던 그 대사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게 참 다행이었습니다.

덕분에 중도하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맨 처음 그림 시작했던 분들 중 제가 가장 끈질기게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되었거든요!

건강한 사람들은 내년에 내가 혹은 가족이 심하게 아플 수 잇다는 생각을 못하니까

그림이란 게그리고 싶으면 그릴 수 있는 건 줄로 생각하지만

저는 기회라는 게 아무 때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아니까요.

 

제 그림들 중에 제가 특히 애착이 가는 것들은 사연이 있는 그림들입니다.

페트 찍고 전이됐다는 소식 듣고 그리기 시작했던 연꽃 그림,

지나간 청춘을 생각하며 울며 그린 화병 그림,

 

그리고 외출이 힘든 환우에게 선물해서 제게는 없지만..눈에 선한 풍경화들도 있습니다.

(그 그림을 받고 더 건강해지셨으면 오죽이나 좋았을까요..

제 마음이 너무 아팠어서 앞으로는 그림선물을 자제하려 합니다.ㅠㅜ)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리부종때문에 붕대를 감고 살아요.

당시는 신발도 260mm 남자운동화에 걸음도 절뚝거릴 정도였어서

외출을 안하고 있었는데,

그림을 그리게 되니 바깥으로 나가게 되더라구요.

볕이 좋은 날이면 사진기를 들고 그림소재를 찾아 다니곤 하면서

얼굴도 검게 그을리고 건강도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연풍광을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감사하고

그 어떤 그림도 이 자연보다 아름다울 수 없단 사실에

제 그림은 이런 자연을 만든 조물주에 대한 감사 찬양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때 건강이 자신없다는 이유로, 혹은 불편한 내 몸이 부끄러워서,

혹은 내가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그림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을 저는 지금 누리지 못하고 있을 거예요.

 

어떤 취미생활이 됐든

나를 고양시키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열어주는 취미생활이라면

지금 시작해보세요.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그건 그때 문제고, 시작하는 오늘이 즐겁습니다.

 

***********************************************************************

 

정리 안된 글이라 좀 깁니다만.. 잘 정리해서 쓰려할수록 글을 안쓰게 되어서

오늘은 꼭 써야겠다 생각하고 그냥 올립니다.

 

출처 : 암과 싸우는 사람들
글쓴이 : 기쁜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