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원고] 내가 기쁜맘이 되기까지

빅토리기쁜맘 2009. 5. 14. 13:41

반갑습니다. 서부교회 000 집사라고 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이끌어주실 것을 믿음으로 구합니다.

 

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제 어머니 이야기를 잠깐 해야할 거 같습니다. /저희 어머니 이명진 집사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셨습니다. 한국 전쟁후에는 국민학교 교사로 교회 주일학교에서 반사일을 하셨어요. 우리 어머니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던 옥한음 목사님 말씀으로는 '전쟁으로 상처 입은 아이들의 마음을 헌신적인 사랑으로 감싸준 천사같은 선생님이셨다'고 하네요. 어머니는 40대 초반에 과부가 된 이후로 저희 4남매 기르시느라 고생을 엄청 하셨어요. 김밥도 떼어다 팔고 집에서 찹살도너스 만들어다 판 돈 중에 그래도 십분의 일은 꼭 따로 떼어서/ 하나님께 드리곤 하셨죠. 어려운 사람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셨어요. 그런 분이셨는데.. 제가 큰 애를 낳은 지 딱 백일되었을 때, 백주대낮에 집에 쳐들어온 강도의 칼에 찔려 돌아가셨습니다. 쉰 여섯 살 때셨어요. 저는 유아세례를 받고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하나님과의 교제의 체험이 없었고/ 당시에는 아예 교회 발길을 끊은 상태였습니다. 어머니가 너무 비참하게 돌아가시자,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신지? 살아 계시다면 우리 엄마가 돌아가실 때 대체 어디서 뭐하고 계셨는지? 어째서 불쌍한 과부를 강도의 손에 내맡겨두셨는지? 원망과 의문이 들고 상실감과 충격이 너무나 커서, 아직 잡히지 않았던 그 강도의 손에 저도 찔려 죽게 해주세요,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그때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행복하게 살자!는 거였어요. 불효만 저지르고 살았지만 거기에 불행해하기까지 한다면/ 어머니가 날 위해 고생하신 게 너무 억울하지 않냐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즐겁고 행복해지는 걸까요? ....알 수가 없더군요.

당시 남편은 복학해서 대학생이었고 밑의 동생 둘도 아직 학생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남긴 것은 삭월세 보증금 정도였어요. 동생들은 맏이인 제가 데리고 살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저는 이미 약간의 우울증끼가 있었어요. 똑똑하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내가 기껏 살림이나 하고 있다니, 이건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됐다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결혼하지 말 걸, 이러지 말 걸, 저러지 말 걸, 이것도 저것도 다 과거에 대한 후회고 현재에 대한 불평이었어요. 정말 행복해지고 싶은데 제 현실은 죽지 못해 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술을 좋아했어요.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졌어요. 물론 그 때뿐이었지만 그럼 세상에 어떤 즐거움이 영원하랴 싶었어요.

저는 기독교 신자들을 멀리 했습니다. 술을 안먹는 사람들이라 재미가 없었습니다. 제 사생활에 참견을 할까봐 겁이 부담스러웠어요. 하나님도 멀리 했습니다. 우리 엄마를 봐도 하나님은 내가 그분을 믿거나 안믿거나 내게 별 차이가 없는 분 같았습니다. 나중에는 아예 하나님이 안계셨으면.. 싶었습니다. 부활하는 것도 싫었고 영생하는 것도 싫었습니다. 삶이 뭐가 그리 좋아서 영원히 살겠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게 어느 날 갑자기 암이 찾아왔습니다. 자궁암 2기 말이었습니다.

암환자가 되고나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제가 저 자신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습니다. 내게 내 생명을 위해 싸울 팔이 없다는 자각이 죽음을 한층 가깝게 느끼도록 만들더군요. 거기에다가 오늘은 옆침대에서 며칠 후에는 앞침대에서 암환자가 고통 끝에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이제 제 차례인 거 같더군요. 그때부터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제법 대담하고 인격적으로도 안정이 된 사람이었는 줄 알았는데, 그건 그만큼 여유가 있었던 것일뿐이더라구요. 죽음의 공포 앞에 선 저의 모습은 한없이 나약하고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습니다. 너 자신을 믿으라고 하지만, 나 자신처럼 믿을 게 없는 인간도 없었습니다.

  

그런 제게 하나님은 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분은 세브란스 병원에서 암이 너무 커서 손쓸 수가 없다고 돌려보내자 그래도 혹시나 하고 자식들이 서울대병원으로 모신 분이셨습니다. 항암 부작용으로 박박대머리라서 누가 봐도 암환자건만, 혼자 늘 싱글벙글 웃고 계시는 겁니다. "걱정 안되세요?"하니까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 것이니 난 걱정 하나도 안한다" 는 겁니다. 그 권사님 수술 후 둘째날 밤에 잠에 취한 간호사가 실수로 옆의 환자 소변줄 을 뺀다는 것이 엉뚱하게 권사님의 소변줄을 빼버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병원에서는 한참 후에야 그 실수를 깨닫고 다시 허겁지겁 소변줄을 끼웠습니다. 이 의료사고는 보통 사람 같으면 뒤짚어질 일이었습니다. 소변줄은 수술 후 방광기능이 제대로 돌아오기까지 달아놓는 것으로, 소변이 제때 배출이 되지 않아 쌓인 요독이 위로 올라가면 자칫 환자가 위독해질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도 그 권사님은 "지비때문에 놀랐으니 놀란 나한테 한턱 내!"하면서 농담으로 그 상황을 다독이셨습니다. 그리고 간병하러 온 딸에게는 걱정할까봐 일언반구도 안하셨어요. 그때 작은 시골교회 권사님이 어찌나 커보이시는지, 제게는 넘지 못할 큰산 같았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이런 것이구나..!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며칠 후 조직검사 결과가 나왓는데 놀랍게도 림프절에 암세포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항암 더 하실 필요도 없고 치료는 이걸로 끝이라는 의사의 말에 권사님은 두 팔을 번쩍 드시면서 "할렐루야!"하셨어요. 큰수술했으니 퇴원도 더 있다 하시고 서울 딸네집에서 쉬었다 가시라고 하는데도, "송년예배때 간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왔는데 하나님이 들어주셨으니 예배보러 가야한다."고 부리나케 짐싸들고 그 다음날로 예천으로 기차타고 가셨습니다. 가시면서 저더러 절 위해 기도하겠다고, 꼭 교회다니라고 당부를 하시더군요.

 

정말 부러웠습니다. 저도 그런 믿음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믿어져야 믿는 거 아닙니까? 

구하라 주어질 것이요라고 했지만, 정말 그럴까? 목사님들 중에도 암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있다는 건 뭘로 설명하지? 가뜩이나 의심이 많은 제게 의심이 뭉개뭉개 피어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권사님같은 믿음을, 간절히 가지고 싶었습니다. 걱정근심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죽음과 고통은 앞날의 문제였지만, 그것에 압도되어 두려움에 깔려 있는 저는 이미/ 산 자의 땅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생전에 어머니가 제게 해주셨던 말이 기억났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지만, 예수님은 의심 많은 도마도 내치지 않으시고 증거를 보여서 믿게 하셨다"  저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믿음을 주세요. 믿음 없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세요. 저를 고쳐주세요. 제게 믿음 주세요. 구하면 주신다했으니 제게 믿음주세요."  저는 그때부터 그렇게 쉬지 않고 온마음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또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믿음을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믿음을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믿음을 구하기 시작하면서 제가 받은 은혜, 불평 투성이던 제가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사람으로 변하기까지 제가 받은 은혜를/ 이 자리에서 일일이  다 말씀드리기는 어려워서, 제 아랫배 흉터 이야기만 해드릴까 합니다. 

 

저는 암 수술 후유증으로 림프액이 줄줄줄 한없이 흘러나와 배에 구멍을 뚫고 기다란 줄을 달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 줄 때문에 샤워도 할 수 없고, 돌아누울 수도 엎드릴 수도 없고, 줄 끝에 달린 주머니를 종아리에 끈으로 묶고 지냈습니다. 바깥출입도 잘 하지 못했어요. 저는 믿음을 가지고 싶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주머니를 떼게 해주세요. 그런데 그냥 떼어지게 마시고 하나님이 떼어주셨다는 걸 제가 알 수 있는 방법으로 떼어주세요."

그러나 서울대병원 비뇨기과 김현회 교수 집도로 세 개 과가 연합해서 여러 차례 시술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서울대병원에서 수술한 환자들 중에서 일년에 한 명 정도 저같은 환자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강남성모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삼성의료원에 알아봤습니다. 못한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의사들은 저더러 그냥 그렇게 평생 살라고,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절 수술한 산부인과 의사가 "최후수단으로 배를 째고 창자 뒤쪽에 있는 림프절을 앞쪽과 연결시켜보자."고 말했지만 비뇨기과 의사들은 잘못하다가는 성공가능성도 거의 없고,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시도라고 다 반대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를 만나기 엿새 전인 2006년 4월 마지막 토요일날, 씨티를 찍으러 병원에 갔을 때 일입니다. 내 배에 줄이 달린 지 다섯달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림프액이 제법 줄어드는 거 같았지만 워낙이 줄었다가 늘었다가 하는 거니까 그러려니 하고 있었어. 밖에서 무료하게 기다리던 남편이 간호사에게 "림프액에 관해서는 누구한테 물어보는 게 맞습니까? 산부인과입니까? 비뇨기과 의사입니까?"  간호사가 림프관을 박은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예약날짜나 당겨볼까하고 혈관조영실로 갔다가 깜작 놀랐습니다. 토요일이라 의사진료가 없는 날인데 왠일인지 저를 담당했던 의사가 나와 있었고 예약도 안한 저희를 마지막 진료환자로 만나주었습니다. 대형병원 다녀보신 분들은 이런 일이 절대 없다는 거 아실 거예요. 의사는 림프액이 조금씩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림프액이 뱃속으로 고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걸 알려면 씨티를 찍어봐야 알 수 있다며 난처해했습니다. 씨티 예약은 늘 환자가 밀려 몇 주후에나 가능했거든요. 하지만 우린 그 날 오전에 씨티를 찍으러 간 거였잖아요! 그 말을 듣자 의사가 당장 씨티 화면을 가져다보더니 뱃속에 고인 것도 없다고 신기해하면서 일시적인 것인지도 모른다고, 삼일 연속 총배출량이 5ml 이하가 되어야 뽑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집에 와서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놀랍게도 딱 5ml 였습니다. 많이 나올 때는 하루에 600ml도 넘게 나오던 림프액이었습니다. 수요일 아침에 부리나케 병원에 가서 림프액줄을 쑥!! 뽑았습니다.

저같이 오래된 환자에게서 림프액이 저절로 줄어들어 주머니를 떼어내게 되는 수도 있다고, 제가 만나본 의사들 중 누구도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만일 그런 예가 있다면 제가 불쌍해서라도 그런 말을 해줬었겠지요. 그런데, 제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제 기도를 듣고 계셨던 겁니다!!

 

전 지금도 제 배에 배액관이 꼽혀 있던 자국을 만져보곤 합니다. 남에게는 보기 흉한 흉터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제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소중한 증거입니다.

 

작년 여름에는 PET 검사에서 암이 전이된 거 같다는 소견이 나와서 몇 달을 계속 이 검사 저검사를 받으며 보냈었습니다. 의사들 말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종양인데 크기에 큰 변화가 없으니 일단 두고보자고 합니다. 전 그때도 제 옆구리의 흉터를 만지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시니/ 걱정 근심 해야할 게 있다면 모두 아버지가 맡아서 하세요. 저는 아버지가 내게 주신 기쁨을 누리며 그것을 나누고 살겠습니다." 기도를 하고나면 정말 저는 평안해집니다. 아버지께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실하신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저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약한 사람입니다. 아직도 제 안에서는 죄가 스며나오구요. 하지만 아버지가 그 오른팔로 부족한 저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심을 믿기때문에 늘 소망을 가집니다. 우리는 다들 한번은 죽습니다. 건강하게 사시다 가시는 분도 계시지만 더러는 큰병에도 걸리고 더러는 사고도 당하겠지요. 또 사는 동안 믿는 사람이라고 환난을 당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그 어려운 순간에 반드시 동행하시고 우리의 모든 걱정과 두려움을 짐져주시고 해결해주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다 듣고 계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들어주시지 않은 기도까지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께서 제 어머니 곁에 끝까지 함께 동행하신 것을 믿고 제 어머니를 위로하시고 품에 안아주셨을 것을 믿습니다.

 

전 이제야 참평안을 찾았고, 그리고 이제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주안에서 참평안을 찾게 되시길 바랍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외쳤을 때 주님이 거절하지 않으셨음을 기억하세요. 믿음을 구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믿음과 구원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마가복음 11장 24절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마가복음 9장 22절 후반~23절